★  즐겨찾기추가
    주일 설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2020-12-30 12:19:35
    최규완
    조회수   618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사야 43 : 14 ~ 21

     

    43: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43: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고

    43: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021년 새해를 맞이한 소망교회 성도님들께 주님의 사랑으로 인사드립니다. “주님과 함께 새 일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에 대해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36:35 에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면 황무한 성읍이 에덴 동산 같이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 37에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니 마른 뼈가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 47에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니 생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다시 살아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43:19에서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들을 낸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고 그 결과 때문에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 된 그들의 형편을 28절에 보면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소의 어른들이 욕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가면서 두 눈이 뽑히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백성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저주, 국가를 잃어버린 저주, 포로였기에 환경적인 저주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들에게 비방 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조롱당하는 자리까지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현재 교회가 당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일 만나야 합니다. ...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의 영혼과 생활 가운데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적으로 환경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습니까?

    1. 하나님은 내 인생에 어떻게 새 일을 행하시는가?

    1)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15절에 보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언제나 거룩하시고 언제나 창조자이시며 언제나 왕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으면 그분과 우리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면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탁월한 어른이 내 친구의 아버지인 것과 내 아버지인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 어른이 내 친구의 아버지라면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이 내 아버지라면 그분의 모든 것은 나와 상관이 있으며 그분의 능력은 내 행복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상관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와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2) 불가능한 일을 행하셔서

    16절에 보니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신 분이시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신 분입니다. 20절에 보면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므로 불가능한 일을 행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는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셔서 사막에서도 물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의 역사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시고 곧이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자신의 환경을 보면 절대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할 수 없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불가능한 환경을 보지 말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적을 물리치셔서 (17)

    17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일시에 홍해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그 일을 방해하는 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실제적인 사건이면서 영적인 비유입니다. 2:15 에서는 통치자들과(정사)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단의 머리를 부수고 어둠의 권세들을 깨드리고 승리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새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셔야 하는데 항상 적들은 그 일을 방해합니다. 부정적인 생각부정적인 말들 그리고 저주받은 듯한 어려운 환경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 일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계획하신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2.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43:21에서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43:25에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며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기 때문에 산만한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 때 집중력이 생기는 것이고 더욱 풍성한 인생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면 세상적인 것,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쾌락에 묶여있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것이고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며 사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감사와 찬송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도록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과거를 잊어버리라

    하나님은 사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과거지향적인 사람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늘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줄에 묶인 강아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개는 줄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줄의 한계를 초월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과거의 영광에 묶인 사람도 있고 과거의 실패에 묶인 사람도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줄이 없는 개와 같습니다. 원하는 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비록 과거에 실패의 아픔이 있었어도,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에 하나님께서 펼치실 그림을 보는 사람입니다. 비전을 보는 사람입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야에서 애굽을 생각하고 애굽을 그리워했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광야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광야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고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2) 하나님을 부르라 .

    43:22에 보니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고통 가운데 머물러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새 일을 방해하는 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조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조금만 환경이 좋아지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환경이 어려운 것이 더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새들이 나무 위에다 집을 짓는 이유는 거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둥지를 공격하는 적이 있습니다. 뱀입니다. 새가 아무리 높은 곳에 집을 지어도 뱀은 나무를 감고 새 둥지가지 올라가 새끼들을 잡아먹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안전해 보여도 사단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3) 예배를 회복하라

     43:23~24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멸망당한 원인입니다.

     

    한때 영국의 웨일스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큰 역사가 일어나서 세계 교회들과 세계를 움직이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영국교회들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가 쇠잔하고 쇠퇴했는가를 역사가들은 몇 가지로 분석을 하는데 그 첫 번째가 교회가 예배시간을 짧게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을 점점 줄이고, 모든 예배를 의식화 예식화 해서 한 시간 내에 끝냅니다. 이런 예배의 쇠퇴가 교회의 쇠퇴를 가져왔고, 교회의 쇠퇴가 국가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은 예배의 형식화를 벗어나려고 노력 중입니다. 우리 역시 예배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변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성에 젖어서 신앙이 의식화 형식화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예배의 변질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예배의 회복을 꾀합시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